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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초 3극점·7대륙 최고봉 정복자 허영호 대장의 별세, 그의 리더십과 도전정신
    이슈안내 2025. 7. 30. 23:30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는 허영호 대장님
    허영호 대장님을 기억하며

     

    허영호 대장은 누구인가?

    허영호 대장은 대한민국 산악인 중에서도 전설로 불리는 탐험가이며, 세계 최초로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을 모두 정복한 인물입니다. 그는 단순한 등반가를 넘어 ‘탐험’이라는 개념을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이어진 그의 도전은 한국 산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에베레스트를 무려 여섯 차례나 등정하며 인간 한계의 물리적, 정신적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해 왔습니다.

    허영호는 탐험가로서의 커리어 외에도 리더로서 강한 책임감을 지녔으며, 단 한 명의 대원도 잃지 않은 원정 리더로도 유명합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철저한 준비와 리더십의 결과였습니다. 허영호 대장의 생애는 그 자체로 ‘인간의 도전 정신’을 상징하는 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에베레스트까지, 정복의 여정

    허영호 대장은 1982년 마칼루(8463m), 1983년 마나슬루(8163m)를 차례로 등정하며 히말라야의 험난한 고산에 도전했습니다. 이후 1987년에는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올랐고, 특히 에베레스트 동계 등정은 한국 최초이자 세계 세 번째 기록으로 기록됩니다.

    그는 1993년 중국 쪽 북동릉, 일명 초모랑마 경로를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하였고, 이후 아들과 함께 '부자 등정'에 성공하며 또 한 번 세계 최초 타이틀을 추가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허영호는 이미 에베레스트를 여섯 차례 오른 철인이었으며, 이는 셰르파를 제외한 세계에서도 극히 드문 업적입니다.

    3극점·7대륙 최고봉 도전과 완성

    1994년 허영호는 남극점에 도달했고, 이듬해인 1995년에는 북극점을 밟았습니다. 여기에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 메시프 등정까지 더해지면서, 그는 세계 최초로 3극점(에베레스트, 남극점, 북극점)7대륙 최고봉 정복이라는 위대한 탐험을 완성했습니다.

    이 도전은 단순히 기록 달성 그 이상이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험, 생명을 건 고산 환경에서의 생존과 리더십, 그리고 글로벌 산악계에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국가적 자산이기도 했습니다. 허영호 대장의 3극점 탐험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위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철인’ 허영호의 리더십과 인간적인 면모

    허영호는 체력과 의지, 기술을 두루 갖춘 전형적인 철인이었지만, 무엇보다 돋보였던 것은 대원 관리 능력이었습니다. 그의 등정 기록에서 주목할 점은 "단 한 명의 대원도 잃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철저한 사전 준비, 환경 분석, 안전 중심의 의사결정 등에서 비롯된 결과였습니다.

    그의 아들 허재석 씨와 함께 한 에베레스트 부자 등정 기록은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감동을 줍니다. 부인을 먼저 떠나보낸 해에 이뤄진 이 등정은 단순한 도전이 아닌, 가족애와 추모의 의미가 담긴 여정이었습니다.

    산악계가 기억하는 허영호

    산악계에서는 허영호 대장을 "자기 완성형 리더"로 기억합니다. 후배 산악인 서기석 씨는 “탐험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했던 보기 드문 인물”이라 평가했습니다. 단순히 산을 오르는 데 그치지 않고, 행정·자료 수집·대원 관리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운영 능력은 그를 뛰어난 전략가이자 탐험가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엄홍길, 고 박영석 대장과 비교해 볼 때, 허영호는 8000m급 14좌 완등보다는 더 넓은 ‘탐험’이라는 세계를 선택했고, 그 안에서 한국 산악계의 정체성을 확장시킨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후대에 남긴 허영호의 유산과 영향력

    허영호 대장이 남긴 유산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철학입니다.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내는 공간이다"라는 그의 신념은 지금도 산악인 및 탐험가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해 체육훈장 기린장(1982년), 거상장(1988년), 맹호장(1991년), 청룡장(1996년)을 수여했습니다. 이는 그가 단지 스포츠인으로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탐험가로 인정받았다는 의미입니다.

    후대의 젊은 탐험가와 등산가들은 허영호 대장이 남긴 도전 정신, 리더십, 그리고 국가 대표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국내 산악대학이나 체육과정에서도 그의 사례가 교육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맺으며 – 탐험가 허영호를 추모하며

    허영호라는 이름은 이제 한 사람의 이름을 넘어, 대한민국 탐험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의 여정은 끝났지만, 그가 밟았던 발자취는 수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쉴 것입니다. 산이라는 공간에서, 생명을 담보로 인간의 한계를 시험했던 그는 단순한 등반가가 아닌, 진정한 탐험가였습니다.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준비했던 고향 제천에서의 전시는 끝내 마무리되지 못했지만, 그의 생애는 산보다 높고, 하늘보다 넓었습니다. 허영호 대장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통해 그를 기억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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